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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나기 직전 개발자의 2021 리뷰

 미래의 시간을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고 더하거나 빼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시간인 ‘회고’. 올해도 어김없이 필자의 2021년을 돌아보며 회고 글을 쓰려 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한 해를 넘기고야 만다.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매년 회고는 꼭 하자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2021년을 되돌아보고 크나큰 이벤트들의 연속이 될 것만 같은 2022년을 위해 더할 건 더하고 뺄 건 빼는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여러 가지 작은 도전들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사용할 수 있었고, 그에 생각하지도 못한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찾아보기도 하거나 필자의 블로그나 다른 경로를 통해 오히려 연락이 왔던 ‘멘토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경험이 되었다. BE, FE, 머신러닝, DevOps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이제 막 개발자로써 취업전선에 뛰어드려 하는 예비 개발자부터 한참 개발을 시작하고 있는 이른바 주니어 개발자까지 다양한 분들을 zoom이나 gather-town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이해하려 노력하며 선배 개발자로써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활동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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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에 만나요 :D

 물론 필자를 완벽하게 잘 성장한 (또는 본보기의 대상이 될만한) 개발자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그들보다는 다양한 경험들을 먼저 해본 선배 입장에서 노하우나 방향성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최대한 풀어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점을 누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적도 있지만 누군가는 XX 기업에 취업을 했다거나 며칠간 복잡하고 힘들었던 고민이 해결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아, 멘토링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더불어 이제는 점점 누군가와 함께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위치에서 있다 보니 이런 점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멘토링을 하면서 필자도 대충 알고 있던 개발 지식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공부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고 이런저런 상담을 하며 느낀 그들의 열정을 조금이나마 간접경험하며 얼마 전부터 잃어버린 내 열정도 찾으려는 동기부여도 되기도 하였다.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개발자로써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하며 Elastic Stack 을 활용하여 코로나19 대시보드 만들기라는 포스팅을 올리게 되었고 그에 힘입어 나만의 데이터 분석 플랫폼 엘라스틱서치라는 책에 베타 리딩을 하기도 하였다. 작년부터 책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는 요청이 아주 가끔 들어오지만 베타 리딩을 하면서 책을 출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기회가 된다면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써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공모주 청약을 가끔 하면서 누군가 알려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공모주 알리미 라는 토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기술 블로그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AWS ec2 서버에 메모리가 조금 남아 배치 형식으로 만들어서 텔레그램으로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인데 생각보다 수요가 많아서 깜짝 놀랐다. 보다 대중적인(?) 메신저인 카카오톡으로 운영하고 싶었지만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비용이 발생해서 (아무리 토이 프로젝트라 해도…) 차마 엄두가 나질 않아 카카오톡 채널만 만들고 텔레그램 링크를 연결해두었다. 지금은 아예 손도 안대는 서비스이지만 잘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면 자동화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는 걸 다시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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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채널 가입자에게 메세지를 보낼 수 있음 좋을텐데…

라이프 사이클의 변화

 문득 이렇게 재미있는 개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적이 있다. 개발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의 끝에는 결국 “든든한 자산"과 “생각의 패러다임 전환”, 그리고 “건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개발 업무 기기를 산다거나 신기술 학습을 위해 투자하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필요하다고 느껴졌고, 공대생의 고립된(?) 가치관에서 다양한 인문학적인 관점들이 가미된다면 개발에도 훨씬 도움이 될 거라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의자에 앉아 컴퓨터만 바라보는 불쌍한 개발자의 삶이기에 건강관리는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라 하루 시간 계획을 다시 정비했어야 했다. 마치 시간표대로 움직였던 학창 시절처럼.

 그렇게 자연스레 미라클 모닝을 하게 되며 오전 6시에 기상을 하게 되었고,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경제 공부와 각종 뉴스레터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 일과 시간에는 오로지 업무에만 집중하고 퇴근을 한 뒤 헬스를 하고서 저녁 12시 전에는 잠에 들어 수면시간을 6시간 확보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 자투리 시간에는 가보지 않은 세상을 가장 간단하고 가장 깔끔하며 가장 함축적으로 정리된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부족한 지식을 채우려 노력하는 중이다. 처음엔 너무 답답하고 재미없기 딱이었지만 막상 생활화되다 보니 오히려 건강하고 장점이 더 많은 라이프 사이클로 변화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고장 나려는 개발자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이슈들로 인해 조직 이동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조직에서 담당하게 된 서비스의 성격은 이전에 담당했던 서비스와 비슷했지만 사뭇 다른 조직 분위기 속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해가며 열정을 불태우기 바빴다.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술 부채 개선이나 단순 반복적인 업무에 대한 자동화, 각종 시스템/서비스 오류에 대한 알림 개선 등 서비스 기능 개발만큼이나 중요하지만 누군가 나서서 하기 싫은 일들을 야근을 해서라도 도맡아서 하려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조직에서 요구하는 필자의 스탠스(stance)와 필자가 취하려는 스탠스가 다른 부분에서 오는 힘듦이 참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다 결국 고장 나려는 개발자로 몇 개월을 그냥 훌쩍 보내버린 것만 같아 너무 아쉽고 슬펐다.

※ 스탠스(stance) : 자세…라고 하기엔 뭔가 적당한 단어가 아닌듯하여..

 시니어니까(난 아직 중니어 같은데…) 다른 사람들을 이끌며 빠르게 업무 파악부터 하길 원하는 조직의 시선. 기술 부채같이 보기에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가만 놔두지 못하는 성격으로 직접 팔 걷어붙이고 나서려는 필자.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렸다고 속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문제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조직에 ‘속해있는’ 조직원으로써, 그리고 회사라는 공간의 목적이 ‘성장(growth)‘보다는 ‘일(work)‘이 먼저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의 무리들을 견주며 결국 나 자산이 고장 나지 않도록 다시 기름칠을 해야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

 이제 올해 입사 일자가 지나면 10년 차(만 9년) 개발자가 된다. 10년 차라는 키워드만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단순히 눈앞에 있는 빨간 망토가 좋아 보인다고 돌진하는 황소처럼 개발만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높고 넓은 시선으로 다양한 관점을 고민해 볼 때가 온 거라 생각이 든다. 마치 성장통처럼. 개발자 인생 30년이라 하면 이제 겨우 3분의 1이 지난 시점에서 벌써부터 뭐가 맞다 틀리다 하며 괜히 힘을 뺄 이유는 없어 보이고. 다만, 다른 직군과는 달리 평생 공부하며 성장해야 하는 개발자인 만큼 올해에도 개발을 즐겁고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통해 계속 도전하는 삶을 유지하는 게 맞아 보인다. 여기서 좌절하거나 포기하기엔 내 열정이나 마음에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블로그를 너무 안썼네. 올해는 좀 다양한 시도를 블로그에 녹여보는 호흡을 가져야겠다.

 필자를 포함한 내가 아는 모든 개발자분들. 새해에는 호랑이 기운으로 버그와 장애 없는 즐거운 개발 라이프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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